영아 살해·유기죄,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형법 개정안 통과

입력 2023-07-18 14:27   수정 2023-07-18 15:13


1953년 형법 제정 때 도입된 영아 살해죄·영아 유기죄가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일반 살해·유기죄가 적용돼 최대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법정 형량이 높아진다.

영아 살해죄·영아 유기죄 폐지는 1950년대 사고방식과 당시의 사회상이 남아있는 낡은 규정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던 차에 최근 '냉동고 영아 살해 유기' 사건이 불거진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이 1990년대 영아 살해에 대한 감경 규정을 일찌감치 삭제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은 변화라는 평가다.

국회는 18일 본회의를 열어 영아 살해죄와 영아 유기죄를 각각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법 개정안은 국무회의 등을 거쳐 최종 시행된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영아 살인은 10년 이하 징역, 영아 유기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이 법정 형량이다. 일반 살인이 사형, 무기, 5년 이상 징역이고, 일반 유기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인 것과 비교하면 처벌 수위가 낮다.

이번 형법 개정으로 영아 살해와 유기도 일반 살해·유기를 적용해 처벌받게 되는 만큼 처벌 수위가 한층 올라가게 됐다.

영아 살해죄와 영아 유기죄 폐지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직전 20대 국회 때도 2건 발의됐고, 18대 때도 발의가 됐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임기가 만료돼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2020년 11월)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2021년 5월) 발의했지만 논의가 탄력을 받진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수원을 시작으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관련 법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영아 살인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여론이 들끓으면서다. 폐기 처분될 운명이었던 개정안은 이달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 17일 전체회의를 거쳐 일사천리로 이날 본회의 문턱까지 넘었다.

형량이 일반 살인·유기보다 낮은 영유아 살인·유기죄가 탄생한 건 법이 형법이 도입된 1953년 시대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6·25 전쟁 직후 극도로 가난한 상황에서 원치 않은 출산을 하거나, 전쟁통에 강간 등으로 아이를 낳는 상황이 사회 문제화된 점을 반영했다는 게 학계 의견이다.

실제로 이런 시대상이 반영된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일반 살인·유기가 아니라 영아 살인·유기죄가 성립된다.

우선 '치욕을 은폐'하려는 동기다. 이는 강간으로 인한 출산이나, 과부·미혼모의 사생아 출산을 소위 '감추기' 위한 목적이다. 이밖에 영아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 예상되는 경우, 불구·기형아 출산, 조산 등으로 생존 가능성이 없는 등의 동기가 있으면 영아 살인·유기죄가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 들어서 이 같은 조건들은 의미가 작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영아를 반드시 부모가 양육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생겨났다. 국가나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아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살해·유기했는데도 형량이 일반 살인·유기보다 낮다는 사실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분위기도 형성됐다.

한국형사정책원도 "1950년대와 현재는 상황 및 가치관에 차이가 있다"면서 "영아살해죄 규정을 삭제해 보통 살인죄로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형평성 문제도 개정 사유로 꼽힌다. 존속살인에 대해선 가중처벌이 적용되면서 영아 살인에 대해서는 오히려 형을 경감해주는 건 평등 원칙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영아의 생명권을 부당하게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개정안 제안 사유를 밝혔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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